성삼문(成三問:1418-1456)은 1418년 충남 홍성에서 성승(成勝)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때 "아들을 하늘에서 세번 낳았느냐?"라고 물어서
삼문(三問)이라고 하였다.
21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집현전 학사로 있을 때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기여했다.
1453년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난(癸酉靖難)
이 발발하자 그는 박팽년(朴彭年) 등 과 함께 단종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에 참여하였으나
세조한테 붙잡히고 후에 처형당한다.
붙잡히고 국문(鞠問)을 당할 때 세조한테 "전하"라는 말을 안 쓰고 "나리"라고 얘기를 하였고 세조로부터 받은 재산은 자신의 집 창고에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다고 얘기하였다.
그후 그는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와 함께 사육신(死六臣)으로 받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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