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3년 거란군이 성종 12년 1차로 침략했을때는 재상 서희의 능란한 외교로써 물리쳤었다.(강동 6주 차지) 그러나 그로부터 17년뒤인 현종 10년(1010) 겨울,거란군이 4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다시 한번 침입하였고 고려에서도 강조(姜兆)장군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나가 싸웠으나 크게 패전하였다.
그러자, 조정에서 항복할 것을 의논하게 되었는데 오직,예부시랑 강감찬만이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강조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세우고,목종을 시해한 죄에 있으니 걱정할 바가 아닙니다. 다만 적은 사람으로 많은 적을 이기지 못함이니
(衆寡不敵) 마땅히 그 날카로운 공격을 피하였다가 천천히 병력을 일으켜 수복하면 될것입니다"
하고 왕에게 피난가게 함으로써 화를 면하게 했다.
강감찬의 군사전략은 위에서 보이듯 군사(兵)의 날카로운 공격을 피하여 천천히 잃은 땅의 수복(興復) 도모하면 되는 것이니 남쪽으로의 피난(南遷)을 건의하는데"라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이말을 풀이해보면 이렇다. 군사력은 날카로운 창날이나 날아가는 화살이나 같아서 날아오는 순간만 피하면 위험은 면하게 되고, 천도를 통해 적의 공격목표를 멀리 유도하면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확보할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병참선을 최대한 신장시켜 적의 병참선을 차단하고 기동력을 제한시켜 병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킴으로써,전투력을 약화시키면서 지연전을 전개해 적의 주력을 무력화한다. 그런 다음 국력을 총동원하여 공세를 펼쳐 국토를 수복하고 적을 내쫓으면된다는 전략이라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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