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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영정

김천일 의병장 영정

by 역사 유적, 사찰 기행 2015. 1. 7.



김천일(金千鎰)선생은 1537년(중종 32)정월 10일 나주 흥룡동(興龍洞)에서 아버지 진사 김언침(金彦琛)과 모친 양성이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김천일이 태어날때 나주의 진산 금성산(錦城山)이 사흘 동안 울었다고 한다. 출생한 다음날 모친이 세상을 떠나고 그해 7월에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고 외조모 서씨,

외조부 이함의 돌봄으로 성장하였으나 어렸을때 몸이 매우 허약하였다. 13세 때 계부인 참봉 김신침에게 처음 글을 배우고 19세 때 일재 이항 선생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였다. 37세 때 군기시주부를 첫 벼슬로 용안현감,강원,경상도 도사,사헌부 지평,임실현감,순창군수,담양부사를 역임하고 50세 봄에 나주로 귀향하여

후진교육에 힘썼다. 53세 때 한성부서윤으로 다시 임용되고 군자감정에 이어 수원부사가 되어 계속 세금을 내지않던 귀족들의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였다가 그들의 모함을

받아 벼슬을 사직하고 나주로 낙향하였다. 1592년 선조 임금이 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호남최초로 의병을 모집하고 6월23일 독성산성에서 왜군의 앞잡이들을

처형시킴으로써 경기도내 혼란했던 민심을 진정시켰다. 1592년 겨울 양화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1593년 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큰아들 김상건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했다.

1603년 좌찬성에 추증되고,태인의 남고서원,임실의 학정서원,나주 정렬사,진주 창렬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느낀점:강직하고 올곧은 모습을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는 초상화라고 생각했고 왕 앞에서 당당하게 직언을 아끼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 돋보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