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8월18일 중봉 조헌은 호남순찰사인 충장공 권율(權慄)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권율은 왜군의 기세를 보고 아군은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열세임을 탐지하고,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중봉 조헌 선생한테 글을 띄웠으나, 이 서한을 보지못한채 출병한 중봉 조헌선생과 기허당 영규대사의 의병부대는 필사무퇴의 결전을 벌이다가 1592년 8월18일 금산 연곤평에서 장렬히 순국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 부모를 잃은듯 매우 슬퍼했고,후에 중봉 조헌선생의 제자인 박정량,전승업은 싸움이 있은지 4일후 700의사의 유해를 한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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