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경회,제 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다.
역사 유적, 사찰 기행
2015. 2. 24. 19:29
1593년(선조 26) 6월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선생은 부하 500명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달려갔다.
당시 진주성에 있던 사람들은 김천일(金千鎰),고경명의 큰아들 복수의병장 고종후(高從厚)가 지키고 있었다.
왜군은 제 1차 진주성전투의 패전을 갚기 위해서 또다시 진주성을 침략하였다.
백성들이 끝까지 항전하였으나,충청병사 황진은 이곳에서 총에맞아 사망하고 6월26일에서 29일까지 장마가 내리면서
29일날 진주성은 완전히 함락되었다.
이 전투에서 많은백성들이 죽고 최경회는 김천일,고종후와 함께 서사일절을 남겼다.
"촉석루의 세 장수는
한 잔 술로 웃으며
긴 강을 가리키노라
강물은 도도히 흘러가니
저 물결 흐르는 한
혼도 죽지 않으리"
서사일절을 남기고 최경회,김천일,고종후는 남강에 투신 순절했다.
뒤이어,주논개도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위해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의암에서 남강으로 순절했다.
인조때 최경회는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의(忠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